웃어야 하는 사람
내가 머무르는 베트남 호텔에는 호텔 프론트에 항상 직원이 있는 곳이었다. 출입 시에도 항상 그곳을 지나야 했기에 내가 호텔에서 나갈 때와 들어갈 때에 항상 그 직원들과 마주쳐야 했다. 직원들은 총 7-8명이 로테이션 시프트로 프론트에서 일을 했었고 나는 그곳에서 약 1년 이상 머물렀었다.
그들은 처음에 마주칠 때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해주었고 나도 밝은 얼굴로 인사를 했다. 조금 지나자 나는 지나갈 때마다 자주 인사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껄끄러울까 봐 나름 서로 인사할 타이밍을 보거나 서로를 배려해주는 듯 못 본 척을 하고는 했다.
인사뿐만 아니라 나름 좋은 호텔이라 청소 관련 요청이나 나의 사소한 부탁이나 요구도 잘 처리해주었다. 나도 컴플레인을 하거나 짜증이 섞인 말로 잘못을 지적한 적도 있었지만 문제들은 잘 해결되었었고, 나도 무례하다고 생각한 행동에 대해서는 사과도 했었다. 그 이후에도 계속 웃는 얼굴로 오갈 때마다 인사를 하며 가끔 안부를 물으며 나름 신뢰를 쌓아갔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 호텔에는 내가 혼자 있었고 방 안에 강아지라도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매일 혼자 일을 하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맞아주는 것은 호텔 직원들이었다. 나도 나름 그들과 조금씩 친해지고 있었다고 생각하며 조금씩 의지를 했던 것 같다. 모든 직원과 친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직원 중 하나는 나의 사소한 일도 많이 도와주었고 서로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조금씩 할 수 있는 직원도 있었다.
그렇게 1년도 넘게 지난 어느 날 내가 다른 장기 투숙객의 불편한 행위를 봐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이유 없이 나를 기분 나쁘게 쳐다보는 대만 투숙객의 행위가 마침 로비 카메라에 녹화되었으니 녹화를 좀 봐주고 판단이라도 해달라는 나의 요청이었다. 그 사람도 장기 투숙객이었는데, 한 번 눈이 마주치고 난 이후로는 볼 때마다 싸울듯이 쳐다봐서 계속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덩치도 나보다 훨씬 큰 사람이었다. 호텔 입장에서도 손님에게 직접 뭐라 할 수는 없을 테니 혹시 나중에 문제가 커지기라도 하면 다른 사람에게 할 말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아 비디오를 확인해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요청을 하고 난 후 모든 직원들이 마치 누가 시킨 것처럼 나를 불러 말하기를 “그 사람하고 문제가 있다니 안타깝네요. 하지만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비디오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고, 물어보면 중요하지 않은 일인 듯이 둘러댔다. 호텔 매니저도 나를 잡고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니 나쁜 의도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비디오를 보아달라는 나의 요청은 재차 요구했음에도 행해지지 않았다.
나도 장기 투숙객이었지만 호텔 입장에서는 해당 손님이 더 중요한 손님이었는지 아니면 직원들이 나를 안 좋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해당 일은 나에게 큰 실망으로 다가왔다. 섭섭하였고, 또 무언가 내가 지금까지 잘못 생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투숙객에게 컴플레인을 넣어달라는 것도 아니었고, 로비에서 나를 또 쳐다보는 그 대만 투숙객의 비디오를 확인하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것 같으면 그들의 의견을 듣겠다고 말을 했으나, 이미 보고 그것을 덮거나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내 편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둘 다 손님이라 곤란했을 수도 있지만, 모두가 하나같이 “그는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웃는 얼굴로 내가 생각이 과했을 수도 있다고 말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키가 180이 넘는 건장한 체격의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작은 체구 때문에 이리저리 치이고 살았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도 호텔에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나로서는 짜증이 났고, 1년을 넘게 살았던 호텔을 당장 나가버리는 결정을 할 만큼의 그들에 대한 큰 실망으로 다가왔다.
그 사람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억지로 웃는 직원들의 얼굴을 보니 그동안 웃음을 나누며 인사를 하고 나의 이야기를 하고, 안부를 묻고 선물을 나누고 했던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 그동안 나누었던 그들의 웃음과 말들이 모두 가짜처럼 느껴졌다.
또 내가 타지에서 많이 외로워서 그동안 그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게 심적으로 의지해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차라리 그들과 철저히 손님과 호텔 직원의 관계로 지내왔다면 이런 일이 있을 때 내가 기대도 하지 않았을 테고 실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친하지 않은 장기 투숙객의 컴플레인이 두려워 비디오라도 확인하고 답변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호텔에 이 이야기를 한 것도 그냥 넘어가려다 어쩌다가 이야기나 나와서 공론화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당연히 비디오를 보고 “그 사람이 좀 이상하긴 하네요”라고 말해줄 줄 알았지만, 그 사람을 감싸주고 나를 이상한 사람 만들기로 작정한 것이 보였다.
설사 직원들이 그렇게 이야기했더라도 남들에게는 그저 아쉽거나 화가 나는 일로 남아 있었겠지만, 외롭고 오랫동안 혼자 있었던 나에게는 호텔 고객으로서 직원들에게 쓸데없는 말과 미소를 나누어서 결국엔 본전도 못 찾는 꼴이 되어버렸다.
직원들도 나에게 해주었던 따뜻한 말들과 미소가 무엇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라 예의상의 것일 수도 있다. (그럴 확률이 훨씬 높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따뜻한 미소로 받아들였고, 한마디 더 나누며 사람들과 친해지려 했지만 그들은 장기 투숙객이었던 나에게 그저 친절하게 받아주었던 것뿐이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니 평소 친근한 척했던 나에게 말로서 달래고 넘어가려 했던 것이고, 이제 굳이 나를 호텔에 더 머무르게 하지 않아도 되는 나는 그들에게 그저 쉬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보통 1년 6개월을 호텔에 머물렀으면 충분히 오래 머물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경험상 그 정도 있었으면 더 이상 잡으려 해도 잡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에게나 친절하지 말라
별것도 아닌 일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별것도 아닌 일에 나도 모르게 상처를 받는 자신을 발견하며 평소에 별것도 아닌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쓸데없는 신경을 쓰고 친절을 베풀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남과 나누려 하는 사소한 정과 친절이 나에게는 독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함부로 친한 척하거나 친절을 베풀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다.
결국 호텔에 근무하는 직원들과 나는 우정이나 관심 따위는 없었다. 어쩌면 내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외로움 때문에 그것을 부정하고 나도 호텔에 아는 사람들이 몇 명 있어, 그들은 내 친구야라고 혼자 애써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직원들 입장에서도 이유 없이 친절하게 베풀어주는 손님을 굳이 외면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단지 그뿐이다.
비슷한 예로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도 후배나 아랫사람의 어쭙잖은 웃음과 미소들로 넘어가 잘해주다가 결국엔 나중에 뒤통수 맞을 수도 있는 일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현명한 사람은 상사에게 적당한 애교도 부릴 줄 알며, 적당히 넘지 않야할 선을 그을 줄 안다. 후배나 모르는 사람이 웃음이나 미소로 다가와도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평정심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호텔에 머무는 동안 그들은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들이 나를 미소로 맞이하던 말던, 나를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던 말던, 나를 존경하던 말던, 나는 손님으로서 시킬 수 있는 일을 시키고 그냥 마지막에 웃는 얼굴로 바이바이하고 가면 되는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만나거나 보게 될 수많은 모르는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미소나 친절을 보이지 말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오히려 편해지는 것 같다. 눈치 보고 산다고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의리를 요구하는 것은, 자신이 정말 외로워서 친절이나 관계를 구걸하는 것과 같다.
인간관계는 친절이나 구걸로 얻어지지 않는다. 어설픈 친절이나 미소를 주고받는다고 쌓이는 것도 아니고, 돈 역시 외로움이나 자신이 원하는 인간 관계를 살 수 없다. 돈으로 어떠한 관계를 만들거나 시작은 할 수 있겠지만, 그 관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상대방에게 물질적인 것만 제공하고 어떠한 관계를 지속하기를 원한다면, 상대방이 부담을 느낄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기대는 순간 우리는 고통을 자초하게 된다.”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타인의 감정과 행동입니다. 결국, 외로움에 기대어 쌓아온 관계가 진정한 것이 아니었다는 깨달음을 통해, 더 이상 쓸데없는 기대를 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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