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에서 누구에게 잘해준다는 것은 보통 잘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상사위치에 있거나 최소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누구에게 잘해준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후배나 말단 직원이 상사에게 잘해준다는 말은 좀 어울리지가 않는다.
개인적인 사회생활의 경험에 의하면 내가 누구를 위해 일할 때는 직장상사들이 나에게 딱히 잘해준다는 사람은 없었다고 느꼈었지만 후에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이 나를 굉장히 배려해 주었었고 잘해준 것이었구나 하고 후에 많이 느꼈었을 때가 많다. 대부분의 상사들은 차가웠고 나를 가만히만 두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그 위치에 있었을 때 나름 후배들에게 잘해주려 많이 애써보려 했던 것 같다. 당사자의 상대방은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아무튼 나의 마음은 그러하였고 지금도 그러한 기회가 있으면 배려심과 도움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려고 했었다. 아니 지금까지 그러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모두에게 그러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누가 되었던 지 부드럽고 긍정적이고 좋은 시작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상대방이 낼름낼름 받아먹기만 하고 돌아오는 것도 없고 그러한 호의와 배려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을 보고 많은 배신감을 느끼고 그러한 사실에 나 자신에게 너무나 큰 화로 돌아오는 것 같다.
딱히 어느 이유라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상관이나 선배의 입장으로서 다른 직원이나 후배를 챙겨주고 배려해 주고 좋은 관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화분의 꽃을 키우듯이 그들에게 물을 주고 햇볕을 쐬어주다가 그 자란 식물이 나에게 독이 되고 있다면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한 자신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식물이야 없애버리면 그만이지만 사람은 없앨 수가 없고 그렇게 일단 해가 되는 존재가 되어버리면 내가 준 물과 거름이 나에게 없앨 수 없는 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사회생활의 인간관계가 그렇게 잘해준다고 인간관계가 잘 풀리는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닌 것 같다.
1.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인상만으로 사람됨됨이를 맞추는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세상에는 별 사람이 다 있구나라는 말은 있다. 특히 사회생활을 많이 안해보거나 사업하는 사람들처럼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나본 적이 드문 나 같은 사람에게는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하나둘씩 만나다 보면 나의 상상을 초월하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냥 특이한 사람이겠거니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또 더한 사람도 보게 된다.
모든 사람이 나 같은 줄 안 것이다.
2. 아무한테나 그렇게 잘 해주면 후에 배신감으로 화로 돌아온다.
뭐 잘해주면 얼마나 잘 해준다고 그럴 수도 있지만 잘해준다는 말이 그렇게 거창한 것을 하는 것보다 어떻게 보면 믿음과 마음을 준다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에서 끌어준다는 표현도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싶은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대체로 인간관계가 좁거나 태생에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가족관계가 불안할수록 그러한 경향이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좋은 사람인 줄 알고 믿음도 주고 배려도 해주고 도움도 주었는 데 후에 알고 보니 그러한 도움을 받기만 하고 좋은 사람인 척만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상대방의 속임수에 넘어가 이제껏 그렇게 해주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속았다는 느낌을 받으면 정말 열받는 것이다.
3. 상대방의 질투와 시기, 뒤통수
여러 가지 케이스가 있을 수 있지만 이 이야기의 전제는 내가 쉽게 말해 갑의 위치에 있거나 상사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직원이나 후배가 나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고 비슷할 수도 있다.
정당한 방법으로 그러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은근히 그러한 서로 간의 위치를 질투하고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고 나이를 배려하고 선배나 상사의 위치에 있으면서 아래의 사람을 배려하려고 했으나 그런 배려와 친절을 역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 상대방의 위치를 시기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경우가 많다.
특히 아래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나이가 많은 경우도 많은 데 한국사회에서 나이를 빼먹고 사회를 이야기하기 힘든 것처럼 이러한 사회생활 관계에서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배려와 친절을 계속 받으며 웃으면서 지내다가 어느 순간에 뒤통수를 처버리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상대방이 실수를 하거나 도마에 올려서 여러 소문을 만들어 끌어내리기를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유없이 그럴 수는 없음으로 이런 경우에는 내가 먼저 나이에 대한 배려와 친절을 굳이 행하지 않아도 미소로 먼저 다가와 약점과 허점을 찾는다.
이런 경우 그러한 것에 말려들어 대응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다.
이러한 이유때문에서라도 처음부터 아무한테나 잘해주면 안 되는 것 같다.
자기보다 갑이나 위에 있는 사람 때문에 불편한 것은 그렇다 쳐도
나의 미소와 믿음을 빌미로 아랫것들이 기어오른다면 이 얼마나 억울한 것인가.
아래라는 표현이 듣기 좋은 표현은 아니나 그런 것들에게 딱히 적당한 단어를 찾기가 힘든 것 같다.
4. 첫 만남에서 웃지 말라. 미소를 보이지 말라.
사람이야 같은 직장이나 같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보게 되다 보면 사람의 됨됨이가 보이고 결국에 성격등을 다 파악하게 될 것이다.
아 저 사람은 처음에 좀 무뚜뚝해보이고 차가워 보였는 데 알고 보니 정말 다정하고 배려 깊은 좋은 사람이구나.
아니면 저 사람은 처음에 인사도 방갑게 하고 나한테 항상 웃으면서 잘해주는 것 같아 좋았는 데 알고 보니 뺑기만 부리고 처세술만 하고 일도 제대로 안 하고 양심도 없는 사람이구나.. 하고 말이다.
뭐 오랫동안 지낸다면 결국 나라는 존재나 상대방이라는 존재의 껍질이 하나둘씩 벗겨지기 마련이지만 잠깐잠깐 만나게 되는 사람이라면 굳이 아랫사람에게 경계를 풀고 웃음과 미소를 보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뭐 작은 미소정도야 당연하지만 너무 경계를 풀어주면 안되는 것이다.
사실 밑에 사람이나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갑이 처음부터 웃어주면 을은 나쁠 게 없다.
좀 약은 사람들은 오히려 갑이나 선배가 처음에 만만해 보이면 첫 만남 등에서 웃으면서 다가오고
진심으로 존중심과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 대놓고 웃으면서 다가오지 못하는 게 정상이다.
처음 보는 밑에 것이 싱글 생글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다가온다면 대부분 조심해야 할 것들이다.
웃음의 이유는 내가 같이 웃게 만들게 하는 것이 크다. 자기가 불리한 입장에서 상대방과의 경계를 허물어뜨려 약점을 찾으려는 수작이 대부분이다. 그들도 의식적으로 그렇게 해야겠다고 하고 다가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한 작자들은 본능적으로 그렇게 한다.
첫 만남에서 진지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기본적인 존중과 예의가 있는 것이다.
5. 무례한 질문이나 행동에는 무언과 무반응
그러한 작자들은 처음에 대부분 약간 무례한 농담이나 질문, 행동 등으로 상대방을 떠보곤 한다.
그러할 때 얼떨결에 웃어넘겨서는 안 된다. 그러한 것을 웃어주는 순간 그러한 작자들은 다음단계를 실행하려 한다.
이러한 무례한 질문이나 말 등에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이다.
그러한 작자의 행동들에 화를 내거나 바보처럼 웃어 넘겨주면 가만히 있는 것보다 못하다.
그저 가만히만 있어도 싸늘함을 표현할 수 있다.
불쾌한 티를 내지 않는 것도 더 효과적이다. 불쾌한 티를 내는 것이 어쩌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례한 행동이나 언행을 하는 이유나 의도가 예의가 없거나 생각이 모자라거나 원래 인간자체가 그러한 사람이어 서일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상대방의 기분을 언짢게 하거나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자극하여 상대방을 흔들어보려는 심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무언과 무시가 가장 적절하고 현명한 처세일 것이다.
6. 사람의 속은 알기가 어렵다.
사회생활은 돈을 벌기 위한 관계 속에 어쩔 수 없이 맺어야 하는 인간관계가 존재하는 것 같다.
이러한 인간관계에 혼자 의미를 부여하거나 사람에게 믿음을 주면서 관계를 키워나가면 혼자 다치기 십상이다.
관계를 잘 유지해나가다가도 후에 상대방이 나의 기대에 못 미치거나 거짓된 속마음을 알아냈을 때 그동안 내가 부어왔던 믿음과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아랫사람에게 느끼는 배신감이란 나 자신을 더 바보같이 만든다.
좋은 선배, 좋은 상사가 되고 있다고 느끼며 아랫사람들을 챙겨주고 나의 믿음을 주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나중에 일이 엇나가거나 실망하게 되는 일이 생기면 이러한 믿음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배신감과 화도 더 커지게 된다.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회생활의 인간관계에서는 사람의 됨됨이나 속을 알기가 어렵고 설마 이러한 나의 믿음과 관계를 유지할만한 좋은 후배인 사람일지라도이러한 모든 믿음과 인간관계의 유지라는 것은 그저 좋은 인간관계, 좋은 사람을 두고 싶은 나의 이기적이고 결핍적인 마인드일 수도 있다.
잘해주어 놓고 나중에 배신감이니 내가 바보가 됐다느니 하는 것보다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심과 경각심 그리고 사람은 다양하고 생각하는 것도 다를 수 있다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심을 가지고 남의 인생은 참견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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